[Cover Story] History - 제주들불축제



[Cover Story] 제주들불축제



HISTORY

제주말의 역사를 알면 들불축제가 보인다




제주들불축제에서 그 이름도 생소한 마조제를 재현한다. 제주의 목축문화를 유지·계승하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마조제와 들불축제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제주말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 한다.


 

탐라국 개벽신화에도 등장하는 말


삼성혈 신화에 의하면 삼공주가 오곡의 씨앗과 말, 소 등 가축을 가지고 제주도에 왔다는 기록을 보아 그 당시부터 말과 소를 이용해 논과 밭을 일구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 이미 말을 키운 흔적


2003년 10월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해안에서 발견된 각종 동·식물 화석에 말 발자국도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학계는 이 화석이 6000~1만여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삼국시대, ‘과하마’를 타고 사냥을 했다


<당서>권 200에는 백제 무왕 22년(621)에 백제왕이 당 고조에게 과하마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 과하가마 탐라에서 백제에 바친 준마다. <일본서기>에는 661년 “말린 말고기 등을 탐라에서 수입했다”고 적혀 있다.




 

고려시대, 체계적인 목축 시작


체계적 목축이 시작된 것은 고려 시대부터다. 충렬왕 2년(1276)에는 몽고말 160필을 지금의 남제주군 성산읍수 산리 일대에 풀어놓았다. 공민왕 16년에는 최 영 장군이 제주에서 벌어진 ‘목호의 난’을 진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말이 많았던 시기


역사상 제주도에 말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고려말-조선초에 걸쳐 2만두가 방목되던 때이다. 이성계가 타던 8필의 말을 ‘팔준마’라고 불렀는데 그중 ‘응상백’이라고 칭하던 말이 제주산이었다. 세종 시대에는 말이 구역을 뛰어넘어 도망가지 못하게 한라산 10소장 둘레에 걸쳐 쌓은 돌담인 잣성이 축조됐다.




 

현재, 변함없는 말의 고장


전국에 있는 2만7천~8천두 말의 90%가 제주도에서 생산된 것이고 말의 사육도 70%가 제주도에서 이뤄진다. 2014년 기준, 제주도청의 집계로 제주마가 1392마리(혈통이 등록된 순종은 200마리), 서러브렛이 4179마리, 혼혈종 한라마(제주산마라고도 한다)가 1만6692마리, 모두 2만2223마리가 있다.



말은 농사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고 말이 건강해야 한 해 농사를 잘 치를 수 있다는 믿음에 방애를 놓았고 매해 마조제를 지냈다. 이는 들불축제의 기원이 목축문화에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중요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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